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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중전화 몇 명 쓰는지 12시간 세봤다

By 김상수

Sep 28, 2018
시작은 간단한 의문이었다. 공중전화가 줄어든다. 하지만, 없어지진 않는다. 누군가는 쓴다. 누군가는 왜 쓸까? 이를 확인하려면? 공중전화 앞에서 기다리는 것. 12시간 동안 공중전화 앞에서 세봤다. 5000만명 스마트폰 시대에 공중전화 수화기를 드는 이들의 얘기를 듣고자. 



   오전 8시

한양대역으로 갔다. 공중전화를 운영하는 KT링커스를 통해 통화량 많은 공중전화로 꼽힌 곳이다. 오전 8시, 시작했다. 대학생들이 오갔다. 누구는 바쁘게, 누구는 여유롭게 지나갔다. 공중전화 앞에서 발걸음을 멈춘 이는 한 명도 없었다. 오전 12시. 4시간이 지났다. 한 명도 만나지 못했다. 조바심이 났다. 못 만날 것 같았다. 다시 KT링커스 측에 문의해 역사, 터미널 등을 제외하고 통화량이 많은 지역을 문의했다. 그래서 나온 곳이 7월 공중전화 통화료가 7만6000원을 기록한 성동우체국 앞 공중전화였다. 곧장 이동했다. 

성동우체국 앞 공중전화. KT링커스에 따르면 지난 7월 기준 병원, 역사, 카지노 등을 제외하면 이곳 공중전화 사용량이 가장 많다. 사진=박이담 기자/parkidam@heraldcorp.com



   오후 2시

요즘 공중전화 통화료는 시내 기준 3분에 70원. 휴대전화에 걸면 38초당 70원. 한 사람이 공중전화로 1분간 휴대전화에 전화를 걸면 140원. 그렇다면 성동우체국 앞 공중전화(7월 통화량 7만6000원)는 한 달에 543명, 하루에 18.1명. 여러 변수를 감안해도, 이 정도면 승산 있다.
서울 내에 가장 인기 있는 공중전화인데, 여기도 좀처럼 만나기 힘들었다. 부스에 접근하는 사람이 간혹 있었다. 인터뷰를 해볼 찰나, 부스 옆에 쓰레기를 버리곤 사라졌다. 쓰레기 버리지 맙시다.
오후 2시 30분. 취재를 시작한 지 6시간 30분 만에 첫 공중전화 이용자를 만났다. 방영환(62) 씨였다. 이곳 공중전화를 즐겨 찾는다고 했다. 방 씨에게 공중전화를 쓴 이유를 물었다. 방 씨는 “보통 문자로 연락을 주고받는데 급할 땐 공중전화를 쓴다”고 했다. 왜 휴대폰이 아닌 공중전화냐고 물었다. “휴대폰이 있지만 짧게 통화할 땐 공중전화”라는 답이 돌아왔다.
방 씨는 흔한 신용카드도 한 장 쓰지 않았다. 방 씨는 매일 성동우체국을 찾아 그날 사용할 돈을 찾아 쓴다. 그가 공중전화를 애용하는 게 어쩐지 잘 어울려 보였다. “내가 좀 고루한 편이야.” 방 씨가 웃으며 말했다. 

아날로그 생활을 즐긴다는 방정환(강남구ㆍ62)씨가 공중전화를 사용하고 있다. 이날 처음 만난 공중전화 이용객이다. 사진=박이담 기자/parkidam@heraldcorp.com



   오후 4시

오후 4시께. 두번째 사람을 만났다. 짐수레를 끌던 40대 남성. 허겁지겁 공중전화 부스로 오더니 짧게 통화하곤 나왔다. 얼른 달려가 공중전화를 쓰는 이유를 물었다. “오늘 집에 전화를 놓고 나왔네. 급하게 전화할 일이 생겼는데 공중전화가 있어서 다행이었지 뭐야. 공중전화가 없었으면 큰일 날 뻔했지.” 이름 물을 새도 없이 그는 바쁘게 떠났다. 

휴대폰을 깜빡 두고 왔다는 한 남성이 공중전화를 이용하고 있다. 사진=박이담 기자/parkidam@heraldcorp.com


오후 5시께. 또 부스를 향하는 사람이 나타났다. 어린 딸 손을 꼭 잡고 있는 어머니였다. 딸과 함께 부스로 들어가더니 통화를 하고 나왔다. 공중전화를 쓰는 이유를 물었다. 그러자 “아, 저는 공중전화 안 썼어요. 딸 학원 선생님이랑 조용하게 통화할 곳을 찾다가 잠깐 들렸네요”라고 말했다. 



   오후 6시 

저녁이 돼서야 세번째 이용객을 만났다. 이번엔 외국인이었다. 중국 요녕성 심양에서 왔다는 이춘범(49) 씨와 그의 조카. 이 씨는 “공항에서 유심칩을 사서 껴서 데이터를 사용할 순 있지만 전화가 안 된다. 중국 가족에게 전화 걸 때 공중전화를 이용했다”고 했다.
그는 공중전화가 있어 다행이라고 했다. “지하철역을 비롯해 곳곳에 공중전화가 있으니 편리하다”고도 했다. 

짧게 우리나라에 온 외국인들에게도 공중전화가 유용하다. 중국 요녕성 심양에서 온 이춘범(49)씨와 조카가 공중전화로 중국에 있는 가족에게 전화를 거는 모습. 사진=박이담 기자/parkidam@heraldcorp.com


오후 8시. 취재를 시작한지 12시간째. 더는 이용객을 만날 수 없었다. 12시간 동안 3명을 만났다. 공중전화를 쓰려고 대기 줄을 서야 했던 시대가 있었다. 그리고 지금은 이렇게 바뀌었다. 



   5만3000대

현재 공중전화는 전국에 5만3000여대가 있다. 1999년에 15만3000여대로 최고치를 기록하고 2010년 8만8000여대, 2015년 6만9000여대로 점차 감소하고 있다. 앞으론 어떻게 될까. KT링커스 관계자는 “한 곳에 몰려있는 공중전화를 분산해서 밀집이 안 되도록 조정하는 최적화 작업을 하고 있고, 이에 따라 늘어날 수도 줄어들 수도 있다”고 전했다.
12시간 취재기. 아날로그 마니아, 휴대폰을 깜빡 두고 나온 사람, 외국인 여행객을 만났다. 공중전화를 쓰는 이는 분명 줄었지만, 그래도 여전히 존재했다. 공중전화를 쓰는 이유도 모두 남달랐다. 그래서 더 특별해보인다. 마치 일상 속 작은 이탈처럼. 공중전화, 그래도 있어서 다행이다.

박이담 기자/ parkidam@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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