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앱 설치에 연회비에...“팬들이 영업사원인가요?”

By 이유정

Jul 16, 2018
웬만해선 아낌없이 지갑을 열 준비가 된 소비자가 있다. 아이돌 팬덤의 수많은 팬들이다. 아이돌을 광고 모델로 삼는 ‘아이돌 마케팅’은 최근 금융권으로까지 확산되며 활발한 양상을 띠고 있다.

그런데 이상하다. 누구보다 충성도 있는 팬들 사이에서 ‘환멸론’이 나온다. 일부 얄팍한 마케팅에 팬심이 악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친구, 지인, 가족 총동원...신규 고객을 찾아라

워너원 팬사인회 초대 이벤트 포스터

그룹 워너원의 팬 김예진(27ㆍ가명) 씨는 최근 지인들에게 신한은행 신규 가입을 부탁했다. 신한은행의 모바일뱅킹 어플리케이션 ‘신한쏠(SOL)’ 설치 부탁도 함께였다. 워너원은 신한은행의 광고 모델이다. 김 씨는 “신규 가입한 친구들이 내 초대 코드를 이벤트 응모에 써줘야 팬 사인회 추첨 확률이 높아진다”라고 설명했다.

신규 고객 유치부터 어플 설치까지. 번거로운 부탁도 힘들었지만 ‘내가 영업사원인가’ 하는 회의감이 들었다.

초대 이벤트 소개 일부

해당 이벤트 응모 페이지에 설명된 내용은 이렇다. ‘추천 받은 분이 이벤트 기간 중 쏠(SOL) 신규 고객인 경우 성공 인정’, ‘초대 성공시 마다 추첨권 부여’, ‘추첨권이 많을 수록 당첨 확률은 Up&Up’. 이벤트는 지난 6월 11일부터 7월 16일까지 한 달 가량 진행됐다.

아예 팬사인회 응모를 포기했다는 한미소(28ㆍ가명) 씨는 “3명에게 부탁했는데 어플을 깔도록 하는 게 너무 미안했다”며 “결국 하지 말라고 하고 나도 응모를 안했다”라고 말했다. 이어 “아무리 지인이라도 다른 사람에게 대놓고 ‘영업’을 하는 거라 불편했다”라고 털어놨다.


   “추천인 넣어주실 분 구해요”

이른바 ‘줄세우기(팬사인회 응모 품목을 많이 소비하거나 참여도가 높은 사람을 기준으로 나열해 당첨자를 뽑는 것)’를 예상하는 팬들 사이에서는 이벤트 참여를 현금 거래하는 상황도 연출된다. SNS를 통해 추천인을 받아줄 사람을 구하고 건당 5000원 내지 1만원 상당의 수고비를 지급하는 식이다.

대리 추천인을 구하는 트위터 계정들

팬들은 기업의 속보이는 마케팅이 불쾌해도 참여할 수밖에 없다고 입을 모은다. 김 씨는 “불쾌해도 문제 제기를 못하는 게, 팬들은 그런 거 아니면 (좋아하는 가수를) 만날 기회가 없으니까”라고 말했다.

이러한 마케팅은 비단 팬사인회에 그치지 않는다. 콘서트 응모권, 시상식 투표권 등에서도 팬들의 결제를 부추기는 사례를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지난 4월 진행된 ‘G마켓 스마일콘서트 1000원 딜’ 응모 이벤트, 오는 8월 소리바다가 주최하는 ‘2018 SOBA’ 시상식 온라인 투표가 그 예다.

G마켓 스마일클럽 콘서트 응모 포스터

워너원, 에일리 등이 참여하는 지마켓 스마일콘서트 응모 이벤트는 연회비 3만원의 ‘스마일클럽’ 멤버쉽 이용자들을 대상으로 했다. 응모를 원하는 팬들은 멤버쉽에 가입한 후 3만5000원 상당의 캐시와 응모 자격을 부여받았다.

약 한 달간 진행된 응모는 한 장당 1000원, 매일 1회 가능했다. 해당 이벤트의 수익금 4700여 만원은 발달장애 자립 재단에 기부됐지만 팬들의 시선은 곱지 않다. 김유림(26ㆍ가명) 씨는 “돈은 우리가 내는데 기부는 기업 이름으로 하지 않느냐”며 “1000원의 강제 기부 같았다”라고 말했다.

한편 소리바다는 현재 ‘SOBA 본상’, ‘SOBA 인기상’ 등 시상식 수상자 선정을 위한 온라인 투표를 진행 중이다. 문제는 ‘별 모으기’ 형태의 투표권이다.

모은 별을 선호 아티스트에게 STICK하는 소리바다 어워즈 투표방식 소개 일부

별을 많이 모을수록 더 많이 투표할 수 있는 팬들의 ‘화력’에 경쟁이 붙는 셈인데 무료 회원은 매일 5개씩, 유료 회원은 매일 80개 씩 별을 얻을 수 있다. 또 투표 기간 내 자동결제 이용권을 구매한 고객에 한해 100~300개의 별이 차등 지급된다.

이렇게 집계된 투표수는 수상자 선정에 30% 반영된다. 이에 일부 팬들은 사실상의 ‘유료투표’라며 투표 반대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아이돌 마케팅, 자율과 책임 사이

물론 마케팅은 기업의 자율성이 큰 영역이다. 기업 입장에선 광고 모델로 삼은 아이돌을 적극 활용해 기업의 이미지와 가치를 높이려 한다. 수 억에서 수십 억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진 고액의 모델료도 아이돌이 가진 유무형의 파급력에 대한 고려가 깔려있는 셈이다. 최근 구매력 있는 성인층이 팬덤 내 두텁게 자리잡은 현상도 이러한 흐름에 한 몫 했다.

하지만 잠재적 고객인 팬들에게 실질적인 유용성이 있는 마케팅인지 단순한 팬심 활용인지에 따라 평가는 갈린다. 한국 소비자연맹 정지연 사무총장은 “마케팅은 기업의 자율적인 영역”이라면서도 “고가의 마케팅 비용은 결국 가격에 반영되는 부분”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팬들을 대상으로 한 상품이 시중 상품에 비해 지나치게 고가로 책정된다든지, 팬심이 마케팅에 과도하게 활용되는 부분이 확산된다면 사회적 책임의 측면에서 비판이나 제제를 받을 여지가 있다”라고 설명했다.

kula@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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