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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겨냥 핵기지ㆍ푸틴의 고향ㆍ200만명 사상…월드컵 개최도시의 정치학

By 신동윤

Jun 26, 2018
2018 러시아 월드컵이 개막한지도 벌써 열흘이 지났다. 조별리그 경기가 반 이상 치러졌다보니 16강 진출팀도 속속 가려지고 있는 상황이기도 하다.

매 경기 명승부가 펼쳐지다보니 하이라이트를 챙겨보기도 바쁘다. 평소 좋아했던 세계적인 스타 플레이어들에 대한 뉴스도 챙겨봐야 하는 이 때, 왠 뜬금없는 개최도시의 정치학이냐고?


모르시는 말씀이다. 러시아 월드컵 본선 경기가 열리는 도시들에는 그냥 모르고 지나치기엔 아까운 숨겨진 스토리들이 많다.

축구 이야기가 쏟아지는 이 때 조금은 다른 이야기를 접하며 쉬어가는 것도 월드컵 축구 경기를 더 재밌게 즐길 수 있는 ‘하프타임’ 정도로 볼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에 개최도시들에 담겨있는 역사 이야기를 풀어본다. (동의 못하시는 분들께는 죄송합니다.)



   핵무기 품은 유럽 속 러시아, 칼리닌그라드

러시아 최서단 영토인 칼리닌그라드(Калининград). 지도에서 언뜻보면 이곳의 위치는 특이하다. 러시아와 떨어져 있는 러시아 땅이다. 지리적으로 볼 때 러시아 본토와 칼리닌그라드주 사이엔 폴란드, 리투아니아, 벨라루스가 가로막고 있기 때문이다.

정치적 의미로 볼 때도 칼리닌그라드의 위치는 특별하다.

서방 유럽세계를 상징하는 유럽연합(EU) 가입국들에 둘러쌓인 러시아 영토라는 점 때문이다. 2004년 폴란드와 리투아니아가 EU에 가입하게 되면서 칼리닌그라드는 EU에 둘러쌓인 모습이 됐다. 그런 의미 때문에 현지인들도 칼리닌그라드를 가리켜 ‘유럽 속 러시아’라고 부른다.

겨울에도 얼지 않는 항구(부동항ㆍ不凍港)이기 때문에 러시아 ‘발트함대’의 중요 근거지가 되고 있는 칼리닌그라드. 최근엔 미국ㆍ유럽으로 구성된 서방세계와 러시아의 군사적 긴장 고조로 인해 이슈의 중심에 서고 있는 상황이다.

1999년 폴란드, 2004년 리투아니아가 러시아의 위협에 대항하는 군사동맹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에 가입하면서 고립된 칼리닌그라드에 대해 최근 러시아는 서방세계에 대응하는 핵무기 전진기지 역할을 부여한 상태다. 올해 1월 러시아군은 핵탄두를 장착할 수 있는 사거리 500㎞의 전술미사일 ‘이스칸데르-M’의 상시 배치를 위한 필요 인프라 구축에 착수, 2월 정식 배치했다. 최근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러시아가 칼리닌그라드의 핵무기 저장시설(벙커)을 대폭 보강했다는 보도를 내놓기도 했다.

2018 러시아 월드컵에선 조별리그 네 경기가 열리는 칼리닌그라드. 지금은 축제가 한창이지만, 알고보면 서방세계와 러시아 사이에 조성된 ‘신(新) 냉전’의 최전선이라 할 수 있다.



   소련과 푸틴의 고향, 상트페테르부르크

러시아인들에게 상트페테르부르크(Санкт-Петербург)는 역사 그 자체다.

러시아인들이 가장 존경하는 제정 러시아 차르인 ‘표트르 1세’가 당시 북유럽 최강국이던 스웨덴과의 전쟁을 통해 수복한 북방영토에 세운 새로운 수도가 모태인 상트페테르부르크. 서구문화를 받아들여 가난한 농업 국가였던 러시아를 강국으로 일으켜 세우는 ‘창(窓)’으로서의 역할을 해왔다.

하지만, 원래 습지였던 곳에 도시를 지으려다보니 수많은 노예를 동원해 돌로 지반을 튼튼하게 만드는 작업을 진행했고, 그 과정에서 수 많은 사람들이 죽으며 ‘뼈 위에 세운 도시’라는 불명예스런 별명이 붙기도 했다.

이곳은 세계 역사를 뒤바꾼 ‘러시아 혁명’의 무대이기도 하다. 세계 최초의 공산주의 혁명을 통해 옛날 사람들만 안다는 ‘소비에트연방(소련)’이 이곳에서 탄생했다. 덕분에 이 곳은 1924년 레닌이 죽자 그를 기념해 ‘레닌그라드’로 불렸고, 1991년 옛 이름인 ‘상트페테르부르크’로 개칭됐다.

현재 수도 모스크바에 이어 러시아 제2의 도시인 이곳은 ‘21세기 차르’로 불리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고향으로 유명하다. 명문대학인 상트페테르부르크대학교 법학부를 졸업한 푸틴은 이곳 부시장을 지낸 바 있다.

푸틴과 함께 연방 대통령과 총리를 번갈아(?) 했던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현 러시아 총리도 상트페테르부르크 출신. 이처럼 현재 러시아 정계를 주도하는 상당수 상트페테르부르크 출신을 가리켜 ‘피제르츠’라고 부른다.



   인류사에서 가장 참혹한 단일 전투의 역사, 볼고그라드

‘볼가강의 도시’란 이름을 지닌 볼고그라드(Волгоград). 잔잔하고 목가적인 이름을 지니고 있지만, 그 뒤엔 인류사 가운데 가장 처참한 기억을 안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소련의 독재자 이오시프 스탈린의 이름을 따 ‘스탈린그라드’로 불리던 시절, 나치 독일과 소련 사이에 벌어진 전투로 200만명에 이른 사람들이 죽거나 다쳤다. 다 부서지고 잔해만 남은 도시에서 1942년 8월부터 다음해 2월까지 200일에 걸쳐 벌어진 전투는 처절함 그 자체였다고 한다. 전투 초기 도시에 도착한 소련군 사병 한 명의 평균 생존시간은 24시간 미만이었다는 기록도 있을 정도다.

제 2차 세계대전이 끝난 1945년, 소련 정부는 이곳을 ‘영웅 도시’ 칭했다. 이어 1960년대 볼고그라드에는 ‘모국 러시아’를 상징하는 거대한 입상이 세워지기도 했다.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던 볼고그라드 시내 마마이언덕에서는 오늘날까지 전사자의 뼈나 조각난 쇳조각 등이 발견되고 있다.

이처럼 볼고그라드는 인류 역사상 가장 큰 단일 전투, 가장 참혹한 전투가 벌어졌던 곳으로 지금도 기억되고 있다.

realbighead@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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