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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율은 '사상 최저'인데 독서모임은 왜 흥할까?

By 나은정

May 17, 2018


59.9%.

지난해 종이책을 한 권 이상 읽은 성인의 비율이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지난 2월 발표한 ‘2017년 국민독서실태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성인 10명 중 4명은 지난 1년간 수험서, 잡지, 만화를 제외한 일반 도서를 단 한 권도 읽지 않았다. 2년 전보다 5.4%포인트(p) 감소한 수치로, 1994년 독서 실태조사를 시행한 이래 사상 최저치다.

하지만 이와 다르게 책을 매개로 한 자발적 ‘독서모임’은 갈수록 성행하고 있다. 자유롭게 읽고 싶은 책을 가져와 조용히 읽기만 하고 헤어지기도 하고, 한 권의 책을 선정해 읽은 뒤 모여서 난상토론을 벌이기도 한다. 수십 만원의 참가비를 내고 독후감을 제출해야 참여할 수 있는 독서모임도 인기다. 인간관계를 멀리하고 ‘혼술’과 ‘혼밥’을 즐기는 2030세대가 지극히 개인적인 행위로 인식되던 독서를 모여서 함께 하는 이유는 뭘까.

동호회 어플인 ‘소모임’에는 책ㆍ여행ㆍ운동 등 19개의 관심사에 따라 다양한 모임이 개설되는데, 책·독서를 주제로 만들어진 서울경기 지역의 모임 수만 150여개에 달한다. 적게는 5명에서 많게는 300명까지 모임별로 멤버수도 다르고 멤버들의 연령대나 읽는 책의 성격, 모임 주기도 다르다. 이 가운데 200여명의 멤버를 둔 ‘직장인 책 읽는 습관’은 4명의 운영진이 공지하는 일정에 따라 자유롭게 모여 각자 원하는 읽을거리를 가져와 개별적으로 읽은 뒤, 서로 읽은 책을 소개하고 감상을 나눈다. 한 달에 3~4회 비정기적으로 열리는 모임임에도 불구하고 벌써 3년째 이어져오고 있다. 

‘직장인 책 읽는 습관’ 모임 모습

‘직장인 책 읽는 습관’ 모임에서 멤버들이 읽은 책들


“힘든 회사생활의 돌파구로 찾은 것이 책이었어요. 그런데 혼자 꾸준히 읽는 게 쉽지 않아서 다른 사람들과 만나 소통하면서 읽으면 어떨까 생각했죠. 그러다보면 시야도 넓어지고 새로운 자극이 될 수 있을 것 같았거든요.”

‘직장인 책 읽는 습관’의 모임장 김용인(30) 씨는 독서모임이 쳇바퀴처럼 굴러가는 삶의 ‘돌파구’라고 말한다. 삼삼오오 모여 책을 이야기하다보면 책을 통한 지식뿐만 아니라 사람에게서 얻는 즐거움이 크다고 했다. 김 씨는 “멤버들 각자가 관심사도 다르고 같은 주제라도 생각하는 게 참 다르더라”라며 “단순히 책이 아니라 책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을 통해서 사고의 폭이 넓어지고 힐링이 되기도 한다”고 말했다.

 
‘플라이북’ 어플(좌)과 묵독파티 소개 화면

도서 추천 플랫폼 ‘플라이북’에서도 10여개의 독서모임이 진행되고 있는데, 플라이북이 매주 토요일 진행하는 ‘묵독파티’는 오는 19일로 173회를 맞는다. 침묵 속에서 책을 읽는 미국의 ‘사일런트 리딩(silent reading)’을 본따 만든 이 모임은 어떤 토론도 과제도 없이 그저 모여서 편안하게 집중해서 책을 읽고 헤어진다. 물론 묵독 이후 ‘애프터 토크’ 시간을 갖고 책 얘기를 나누기도 한다. 원하는 사람에 한해서다. 묵독파티를 찾는 이들은 어떤 소음이나 방해 없이 정해진 시간 동안 온전히 책을 읽을 수 있다는 점을 가장 큰 매력으로 꼽는다.

취향 공동체를 지향하는 ‘아그레아블’은 강남의 전용공간에서 책을 매개로 모이는 일종의 커뮤니티다. 매주 250여명의 인원이 모이는데 참가자들은 수·토·일요일에 진행되는 정기모임에서 7~8명이 한 조가 돼 3시간에 걸쳐 자신과 자신이 읽은 책을 소개한다. 출판사에서 지원받은 책을 읽고 리뷰를 작성하기도 하고, 고전·미술 등 정해진 테마로 4주 이상 스터디 성격의 테마모임을 갖기도 한다. 드로잉 클래스나 연극 관람, 합창단 등 다양한 커뮤니티 활동을 함께 할 수 있는 게 특징이다. 아그레아블에 3년째 참여하고 있다는 한 멤버는 독서모임을 하는 이유에 대해 “직장과 나이를 떠나 사람 대 사람으로 만나 책으로 교감하는 것, 책을 통해 경험으로는 다 얻을 수 없는 상황에 대해 유연해지려 노력하는 사람들을 만나는 게 좋다”고 설명했다.

 
‘트레바리’ 홈페이지 독서모임 소개 화면

유료 독서모임 스타트업인 ‘트레바리’는 강제성이 강한 멤버십 북클럽이다. 트레바리는 4개월씩 클럽제로 운영되는데, 이름이 알려진 명사가 ‘클럽장’으로 모임을 이끄는 경우 29만원, 일반 클럽의 경우 19만원의 가입비가 든다. 각 클럽마다 선정한 책을 읽고 한 달에 한 번 ‘아지트’라는 전용공간에 모여 4시간에 걸쳐 토론을 하는데, 모임 이틀 전까지 독후감을 제출하지 않으면 참가할 수도 없다. 비싼 돈을 들여서라도, 제대로 읽고 쓰고 대화하자는 취지다. 읽을 마음이 없는 사람은 비용을 지불했다 하더라도 무임승차 할 수 없다. 트레바리는 3년 전 4개 클럽, 회원 80명으로 시작했지만 5월 현재 2500여명의 회원들이 200개의 클럽에서 활동하고 있다.

이렇듯 다양한 독서모임이 늘어나고 있는 데 대해 이동귀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는 “독서모임에 나간다는 건 혼자 책을 읽는 것보다 생산적인 도움을 얻겠다는 목적이 있는 것이다”라며 “자기성장에 가치를 둔 젊은 세대들의 자기개발에 대한 욕구와 부담스럽지 않은 소셜라이징(관계맺기)에 대한 욕구가 맞물려 있다”고 분석했다. 2030세대가 대체로 의무적이고 깊은 인간관계를 기피하지만 책을 매개로 지식을 쌓거나 관심사를 공유하고 힐링을 얻는 등 특정한 목적 아래서는 자발적으로 관계를 맺는다는 것이다.

학교, 직장, 나이 등 자신과 타인을 구분시키는 모든 위계에서 벗어나 책으로 연결되는 곳, 비슷한 취향을 공유하는 사람들로부터 다른 생각을 들을 수 있는 곳, 너무 가볍지도 무겁지도 않은 관계 속에서 원하는 만큼의 만족을 얻을 수 있는 곳. 독서모임의 인기가 한동안은 지속될 것으로 보는 이가 많은 이유다. 

betterj@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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